2020. 9. 8. 10:01ㆍ흥미/역사
그리스의 7현인
청년 솔론
솔론의 태생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견해가 조금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엑세케스티데스의 아들이라는 의견이 많다. 그는 재산이나 권력으로는 아테네의 중류 계급 정도이나 집안으로는 아테네의 왕족인 귀한 가문이었다. 솔론은 어렸을 때부터 페이시스트라토스와 가까운 사이였다. 솔론의 부친은 너그러운 사람이어서 재산을 남에게 나눠주어 집안이 어려웠으며,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솔론는 어렸을 때부터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했으며, 청년이 되어서는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혼자 장사를 시작했다. 그가 자주 여행한 것은 돈이 아니라 지식과 경험을 쌓기 위해서였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이렇듯 솔론은 학문에 대한 열성이 남달랐다. 다음은 솔론의 시이다.
나이는 하루하루 늘어가지만
배움의 길은 나날이 새롭구나.
현명한 자들일 수록 지위나 권력에 대한 갈망보다는 학문에 대한 열정이 크다.
리쿠르고스와 마찬가지로 솔론도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경험을 쌓았다.
살라미스 섬
그 당시 살라미스 섬이 어느 나라의 영토인가 하는 문제로 아테네와 메가라는 오랫동안 싸움을 계속해 오고 있었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아테네 사람들은 전쟁을 단념하고 법을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살라미스 섬이 아테네에 속한다는 말을 하면 사형에 처한다는 법률이 있었다. 하지만 솔론은 이것은 불명예스러운 일이라며 분개했다. 그는 정신병에 걸린척 하며 살라미스의 소식을 노래하는 시를 낭송하였고, 페이시스트라토스도 나서서 솔론의 말을 받아들이자고 설득했다. 따라서 법률은 취소되고 솔론의 지휘에 따라 전쟁이 시작되었다. 솔론이 배를 타고 콜리아스에 가보니, 여자들이 데메테르 여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는 부하를 탈주병으로 꾸며 살라미스에 보냈다. 부하는 자신을 따라오면 아테네의 여자들을 잡을 수 있다고 했고, 청년들은 여자로 위장하여 춤을 추며 놀고있다가 메가라 사람들이 서로 타투어 덤벼들 때 칼을 찔러 죽였다. 그리고 곧바로 살라미스로 가서 섬을 점령하였다. 그 뒤로 메가라인들이 계속 전쟁을 걸어와서 서로 피해를 입게 되자 나중에는 스파르타 인들의 중재를 받게된다. 스파르타 사람들은 메가라의 헤레아스와 아테네의 솔론의 이야기를 듣고, 아테네의 땅으로 판결을 하여 솔론의 명성이 더욱 높아진다. 이 사건으로 솔론의 명성과 세력은 더욱 높아졌다.
당시의 법에 저촉되어 잡히지않게 솔론은 자신이 병에 걸렸다고 소문을 퍼뜨린다. 그러한 척을 하며 살라미스를 되찾자는 의미를 전한다. 이 때 페이시스트라토스도 나서는데, 이 인물은 사람들을 잘 설득했다. 청년시절의 솔론은 국가의 명예를 중요시했던 것 같다.
솔론의 정책
오래 전부터 계속되던 각 파벌의 정권 싸움이 일어났다. 산간 지방 사람들은 민주 정치를, 평지에서는 과두 정치를, 해안 사는 사람들은 혼합 정치를 주장하며 각 세력끼리 다투게 되었다. 빈부격차 또한 심해져서 아테네는 위험한 상태가 되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부자들에게 진 빚 때문에 수확의 6분의 1을 바치고 있었고, 몸을 저당잡혀 노예가 되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 파벌에 물들지 않고 있었던 사람은 솔론뿐이었다. 아테네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솔론은 아르콘(지위:장관)으로 선출되었다. 부자들은 그의 부유함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그의 정의감 때문에 다같이 자기들의 편이라고 믿고 있었다. 솔론은 "모두가 평등하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친구들이 그에게 왕위를 제안했지만, 그는 "전제 군주는 과연 좋은 자리이긴 하지만 한 번 그 자리에 앉게 되면 떠날 수가 없게 된다"라고 말하며 사양한다. 솔론은 일단 빚을 탕감해주는 '무거운 짐 덜어주기' 정책을 시행했다. 그리고 부채의 잔액을 면제하고, 사람 몸을 저당으로 돈을 꾸어 주는 것을 금지하였다. 도량을 크게 하고 돈의 가치도 높여서, 빚을 갚기 유리해졌다.
이 때 솔론에게 괴로운 일도 생겼다. 그가 토지 소유는 건들이지 않고 빚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라는 것을 친구가 듣고, 빚을 내어 넓은 땅을 사들인 것이다. 이 일로 솔론은 국민의 신임을 크게 잃게 되었다. 하지만 솔론은 부채를 대신 갚아주어 국민들의 의혹을 풀었다.
솔론의 정책은 처음에 어느 편의 호응도 얻지 못하였다. 부자들은 채권을 잃어버렸고, 빈민들은 토지를 분배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사람들이 솔론의 정책이 옳았다는 것을 알았고, 솔론은 여러 권한이 부여되었다. 그는 드라코의 법률 중 살인죄를 제외한 나머지 무겁고 가혹한 형벌은 모두 폐지했다. 그 당시 드라코의 법은 도둑질도 살인자와 같은 형벌을 받는 등 피로 쓴 법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그는 시민의 재산을 조사해 아래와 같이 계급을 나누었다.
펜타코시오메딤니 - 1년 500되 수입 이상
히파다 텔룬테스 - 1년 300되 수입 이상 (또는 말 한 필 소유)
제우기타이 - 1년 200되 수입 이상
테테스 - 1년 200되 수입 이하
테테스는 관직에는 오를 수 없으나 공동집회에 출석하고 배심원의 자격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자격도 나중에는 특권으로 인정되었는데, 재판의 판결을 배심원이 내리기 때문이다. 솔론은 원래 아르콘이 판결냈던 사건도 모두 재판소에서 소송하도록 규정하였으며, 법률 조항을 애매모호하게 만들어 재판소의 권위를 높였다. 이 부분에 솔론은 이렇게 썼다.
나는 평민들에게 필요한 힘을 주고
귀족들의 권세도 그대로 보호하였으니
서로를 폭력으로부터 지켜 주었고
어느 쪽에게도 부당한 승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솔론은 최대한 모든 세력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 길은 어려운 길이었을 것이다. 솔론의 친구들은 대체 어떤 존재였는지 모르겠다. 솔론을 왕으로 추대한 것과 정보를 통해 이익을 꾀한 것을 보면 솔론과 비슷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친구의 앞길을 막아버리는 사람이 친구인지 의심스럽다. 솔론은 법률 조항을 애매하게 만들었는데, 시민에게 힘을 실어준 것은 좋지만 공정성의 면에서는 잘 모르겠다. 시민에는 산간 지방의 민주주의파가 많을텐데, 너무 그들의 입맛에 맞는 방식으로 결정나지 않을까? 뭐 솔론은 최고법정과 재판소가 서로 견제할 수 있게 공평한 제도를 마련했다고 한다.
추가적인 정책들
솔론이 만든 좋은 정책들이 더 남아있다. 그는 평민을 보호하기 위해 가해 행위를 고발할 수 있게 하였다. 한 일화에서 그는 어떤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도시가 어떤 곳이냐고 묻자, "피해를 당하지 않은 사람들도 피해를 입은 사람과 똑같이 범인을 벌줄 수 있는 도시가 가장 살기 좋은 곳입니다"라고 답했다. 솔론은 또한 아르콘을 지냈던 사람을 모아 아레오파고스 회의(최고법정)를 실시하며, 네 부족에서 각각 100명씩 뽑아 제 2의 회의(하원)를 구성했다. 그는 또한 내란이 있을 때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고 중립을 지킨 사람은 시민권을 박탈한다고 규정을 정했다. 결혼에 있어서 신부가 따로 지참금을 가져오지 못하게 해, 너무 물질적이지 않게 했다. 죽은 사람을 비난하지 못하게 한 규정도 있었고, 유서와 유언에 대한 법도 만들었다. 이제는 자식이 없을 경우 자신이 원하는 사람에게 재산을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장례 때 하는 많은 제사 등을 금지시켰다. 죽음을 슬퍼하는 일이 지나치면 사람을 나약하게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티카는 오고가는 사람은 많지만 토지가 메말라 생산되는 양이 적은 상태였다. 솔론은 상공업을 장려했으며, 무역에 힘쓰기 위해 법을 제정했다. 그 법은 자식들에게 무엇이든 한 가지씩 기술을 배우도록 해, 그렇지 않은 아버지는 아들이 부양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테네의 땅은 농민들의 생활을 부유하게 해주지 못하였고, 그 실정에 맞춰 일을 하지 않는 자를 처벌하도록 법률을 고쳤다. 또, 이민법을 보면 출생한 도시에서 영원히 추방되거나 모든 가족을 아테네로 데리고 온 사람들만을 시민으로 인정했다. 프리타네움이라는 곳에서 단체식사를 하도록 했는데, 너무 자주 참가하거나, 초대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벌을 주었다. 전자는 너무 욕심이 많고, 후자는 국가를 경멸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였다. 솔론은 이 법을 100년동안 시행하라고 명령하였다.
솔론은 정말 평등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애쓴 것 같다. 모두가 평등해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던 것일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로써는 당연한 법률들이 그 당시에는 생소하게 제정되었다. 내란에 관한 법률은 제법 재미있다. 사실 처음 이 법률을 보았을 때, 중립하면 솔론이다 싶었지만 이 글의 뒷부분을 보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는 다르지만 몇가지 법률은 채택하면 좋겠다고 생각된다. 결혼에 있어 지참금을 줄이는 것과, 장례를 간소하게 하는 것은 상당히 괜찮아 보인다.
10년의 여행
솔론이 모든 것을 법을 만들어 시행하자, 사람들이 찾아와 법률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는 이 말을 하나하나 들어주면 오히려 새로운 법을 해칠 것이라고 생각했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며 여행을 구실로 10년의 휴가를 얻었다. 그는 맨 처음 이집트에 가서 아틸란티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고 시를 지었다. 그리고 키프로스 섬에 갔는데, 테세우스의 아들 데모폰이 세운 작은 도시에서 필로키프로스 왕의 대접을 받았다. 이에 솔론은 평야로 도읍을 옮기면 더 좋은 도시가 될 것이라고 권하였고, 스스로 사람을 모아 새 도시를 건설했다. 왕은 그 공로를 고맙게 여겨 도시 이름을 솔리라고 지었다. 솔론과 크로이소스가 만났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이는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솔론을 이해하기에 중요한 자료이다.
솔론은 크로이소스의 초대를 받아 사르디스로 갔다. 이 나라는 매우 부유했고 화려한 옷을 입은 호위병과, 금과 패물 등으로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솔론은 왕에게 어떤 찬사도 하지 않았고, 왕은 계속 보물을 보여주며 자기만큼 행복한 사람이 있겠냐고 물었다. 솔론은 평범한 시민의 이야기를 하며 그가 더 행복하다고 했다. 왕이 화내자, 솔론은 "사람의 인생이란 항상 변화무쌍하고, 앞날을 예측 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오늘 하루의 행복을 자랑하지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시기하지도 않습니다"라고 했다. 코로이소스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솔론은 그곳을 떠나게 된다. 이 때 동화작가인 이솝도 초대를 받아 있었다고 한다. 이솝이 솔론에게 "솔론 선생, 왕과 얘기할 때는 되도록 짧게 말하거나, 아니면 좋아할 말만 골라서 해야 한답니다"라고 충고했다. 그러자 솔론은 "그러지 않습니다. 짧게 말하거나 아니면 도리에 맞는 말을 해야하는 겁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난뒤, 크로이소스는 키루스와의 전쟁에 패배해 화형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가 장작더미 속에서 모든 페르시아인과 키루스를 통해 솔론이라는 이름을 외치며 통곡한다. 이 광경을 보고 놀란 키루스는 물어보았고, 크로이소스는 솔론이 해준 이야기를 하며 "그의 말처럼 행복이란 손에 넣었을 때의 기쁨보다 잃었을 때의 불행이 더 큰 법이오"라고 했다. 그러자 키루스는 솔론의 현명함에 감탄하여 크로이소스를 살려주었다고 한다.
솔론의 말대로, 모든 사람의 기호에 맞출 수는 없다. 그런 법이 있다면 오히려 해로운 법일 것이다. 그는 10년의 휴가를 얻었는데, 이러한 점이 참 대단하다. 가만히 누워서 아무것도 안할 수 있는 지위인데, 그는 여행을 떠난다. 솔론은 외국에서도 유명하여 많은 대접을 받은 것 같다. 그와 별개로 이솝이 이 시대의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알아 신기했다.
아테네에 불어오는 변화
솔론이 여행하는 동안, 아테네는 파벌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리쿠르고스가 평지에 있는 사람들을, 메라클레스가 해안에 있는 사람들을, 페이시스트라토스가 가난한 테티스를 지원하며 산에 사는 사람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솔론이 귀국하자 많은 환영과 존경을 받았지만, 이제 나이가 많아 연설을 할 수도 없었고 하려 하지도 않았다. 솔론은 여러 당파의 지도자들을 만나 화해 시키려고 노력을 했다. 페이시트라토스는 그의 의견을 가장 잘 들어줬지만, 그는 야망가였다. 그 무렵, 테스피스가 트래지디라는 극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솔론은 연극을 보며, "이런 일을 연극이라고 해서 인정해 준다면 언젠가는 진실한 일에도 그런 거짓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오"하고 탄식했다.
어느 날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시민을 선동하기 위해 일부러 몸에 부상을 만들고 반대파에게 이런 변을 당했다고 말했다. 솔론은 이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히포크라테스의 아들이여, 그것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를 흉내낸 고약한 짓이오. 그러나 그대는 지금 제나라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이런 짓을 하고 있지만, 적어도 오디세우스의 속임수는 적을 속이기 위한 것이었소."
하지만 사람들은 호위병을 세워 아크로폴리스를 점령했다. 솔론은 광장에 나가서 연설을 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야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솔론의 말을 따르지 않았고 솔론은 크게 실망한다. 그는 집에 돌아와 무장하고 "나라와 법을 지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고 써서 문 앞에 붙였다. 친구들은 그에게 피신하라고 했지만 그는 아테네 사람들을 훈계하는 시를 쓴다. 그는 뭘 믿고 이런 대담한 행동을 하냐는 질문을 받자 "내 늙은 나이를 믿소"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페이시스트라토스는 권력을 잡은 뒤에도 여전히 솔론을 존경하여 그에게 많은 일을 의논했다. 솔론도 그의 상담을 들어 주고 조언과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솔론은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죽은 뒤에도 오래 살아있었다고 전해진다.
드디어 마지막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서 솔론에 관한 내용은 지금까지의 영웅들보다 유난히 많았다. 솔론은 많이 늙었고, 그의 부재인 10년은 큰 세월이었다. 솔론을 따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는 독재 정권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예전에 그가 정책을 세울 때, 민족을 규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다만 스파르타의 리쿠르고스 때와 달리 재산(땅)의 재분배가 일어나지 않았기에 그러한 균열은 융화되지 못하였다. 로마 누마 왕의 직업별로 조합을 만드는 방식도 생각되지만, 그 당시를 겪어보지 못했으므로 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솔론은 결국 독재정치를 막지 못했고 한동안 아테네는 참주정치가 이어진다. 노인이 되서도 계속 평등을 위해 맞서는 모습이 멋있게 느껴진다. 솔론은 국가의 위기에서 중립을 선택하는 자가 절대 아니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바랬던 솔론은 분명 현인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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