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타르크 영웅전] 리쿠르고스

2020. 9. 2. 01:06흥미/역사

스파르타의 정치가

출처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5/57/Lycurgus.jpg

 

리쿠르고스

헤라클레스의 11대손 리쿠르고스는 스파르타의 왕족이다. 형이 죽은 후, 에우노모스의 두번째 부인의 자식인 르쿠르고스에게 왕위 계승권이 넘어왔다. 얼마 동안 통치한 뒤 형수인 왕비가 임신중인 것을 알자,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섭정을 하겠다고 한다. 이 때 왕비는 자신과 결혼해 왕과 왕비의 자리에 오르자고 제안한다. 리쿠르고스는 그 자리에서 거절하지 않고, 아이가 태어나자 받아 안고 사람들에게 "스파르타여, 그대들의 왕이 탄생했다"라고 선포한다. 왕좌에 앉게 된 아이의 이름은 카릴라우스다. 태후의 친척들은 리쿠르고스를 못마땅했는데, 불행을 염려해 그는 외국으로 여행을 간다. 그는 크레타, 이오니아, 이집트, 스페인, 아프리카 및 인도에 가며 다양한 문화를 체험한다. 스파르타 사람들은 리쿠르고스를 그리워해 몇 차례나 사람을 보냈다. 스파르타의 두 왕 카릴라우스와 아르켈라우스는 리쿠르고스의 지도력이 필요했고, 리쿠르고스는 스파르타로 돌아왔다. 


리쿠르고스는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다. 권력을 탐하지 않고, 여행을 마친 뒤 개혁을 위해 다시 국가로 돌아온다. 이러한 점에서 스파르타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다양한 국가를 여행다녔다는 점에서 호메로스의 모습도 보인다.


스파르타 개혁

리쿠르고스는 스파르타로 돌아온 뒤 개혁을 단행한다.

아래는 개혁 내용이다.

  • 28명으로 이뤄진 원로원을 형성해 왕권을 분산시킨다.

강과 다리 사이에서 회의를 했다. 백성들은 발언권이 없었지만, 결의를 하는 권한이 있었다. 후대에 와서는 국민이 부당한 결정을 할 때, 장로 및 지도자가 해산할 수 있다는 조항이 추가된다.

 

  • 토지를 모두 재분배한다.

기존에 토지가 매우 불평등한 상태로 분배되어, 여러 악폐가 생겨나고 있었다.토지를 골고루 분배해, 부자들은 자본이 아닌, 용기와 덕으로 명예를 얻도록 했다.

 

  • 탐욕을 억제하기 위해 금화, 은하를 거둬들이고 쇠돈만을 사용하게 한다.

부피가 크고 무거웠지만 그 가치는 얼마되지 않았다.이 정책을 시행하자 나라 안의 여러 범죄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 사치품을 전부 없앤다.

장사꾼, 점쟁이, 조각가 등을 없앴다. 대신 생활에 필요한 가구의 질을 향상시켰다.

 

  • 여러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서 함께 식사를 하도록 한다.

호사로운 곳에서 산해진미를 쌓고 시중을 들어가며 먹는 음식은 사람을 병들게 만든다고 생각했다.식사는 15명 정도가 모였고, 제사나 사냥 외에는 집에서 식사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오랜 기간에 걸쳐서 시행됬는데, 아기스 왕은 집에서 식사를 하려고 공동 식사장에 자신 몫의 음식을 가지러 보냈다가 벌금을 내야했다.

 

 

리쿠르고스의 정책에 부자들은 불만을 품었고, 리쿠르고스는 얼굴을 몽둥이로 맞은 적도 있다. 그로 인해 시력을 잃었는데, 벌을 주지않고 겁내는 기색이 없었다고 한다. 공동 식사에서는 예절을 가르치기 위해 사내아이을 데리고 나오는 일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정치적 지식, 유쾌한 이야기 등을 배웠다. 남의 비난을 들어도 태연한 스파르타인의 특색은 여기서 나왔다. 연장자가 출입문을 가리키며, "단 한 마디도 저 문 밖으로 나갈 수 없소"라고 말하는 풍습도 있었다고 한다.


  • 법률을 글로 기록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법률을 강제로 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속에 새기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소한 약속, 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일은 사정에 따라 고쳐 나가게 했다.

 

  • 한 나라와 여러 번 전쟁을 하지 않는다.

자주 싸우며 스파르타의 전술을 파악하게 되면 적군이 강해져 전쟁에 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아이가 일곱 살이 되면 국가에서 모아, 똑같은 규율 속에서 먹고 생활하고 운동하고 놀게 하였다.

생활에 필요한 것을 배웠으며 명령에 대한 복종, 힘든 것을 견디는 것, 싸움에서 이기는 법 등을 배웠다. 

 

 아이가 태어나면 검사관이 확인해 튼튼하면 기르고, 아니면 계곡에 갖다 버렸다. 아이는 몸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이불도 덮지 못했고, 혼자 어둠 속에 있어도 두렵지 않게 길러야 했다. 아이들은 식사를 항상 적게 받았는데, 양을 보충하기 위해 대담하고 영리한 방법을 써야했다. 또한 스파르타의 아이들은 도둑질하는데 진지했다. 도둑질 때문이 아니라 도둑질을 들키는 경우에 심한 벌을 받았다. 소년의 명예, 불명예는 그들의 후견인도 함께 받아야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짧고 간결한 말을 쓰도록 교육받았다.

 

이 부분에 있어 재밌는 일화가 있다.

리쿠르고스에게 어떤 사람이 신에게 바칠 제물을 왜 그렇게 싸고 작은 것을 고르느냐고 물어보자, 리쿠르고스는 "오랫동안 신을 섬기기 위해서요"라고 대답했다.

또 한 번은 스파르타의 도시를 성벽으로 둘러싸서 적의 침입을 막아야 한다고 사람들이 주장하자, "돌 대신 사나이들로 둘러싼 도시는 결코 허물어지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리쿠르고스와 마찬가지로, 스파르타 사람들은 한 번입을 열면 깊은 뜻을 지닌 말을 했다.

 

그 밖에 많은 내용들이 있다.

남편은 아내를 존경했고, 여자들의 비난은 직접적인 충고보다 큰 효과를 냈다. 결혼을 장려했으며, 독신인 남자는 법률에 따라 권리를 일부 빼앗겼다. 결혼은 신랑이 신부를 납치하는 식으로 이뤄졌고, 정중한 태도로 밤에만 서로 만나야 했으며 남에게 들키면 안됐다.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보내 좋은 자손을 얻게 하거나,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이는 아이를 국가의 것이라고 생각해 건강한 아이를 낳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풍기가 문란해지는 일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스파르타 사람들은 사치와 낭비를 금해야했다. 청년들은 전쟁을 할 때만 장식 및 비싼 무기를 가지고 화려한 옷을 입을 수 있었다. 따라서 전쟁에 출정하는 청년들은 기쁘고 들뜬 마음이었다고 한다.

 


대중에게 알려진 스파르타의 이미지는 무식하고 잔혹한 이미지이다. 놀랍게도 스파르타는 큰 지혜로 가득찬 도시였다. 원로원을 통해 권력은 안정되었고, 여러 정책들은 스파르타인들을 깨어있게 했다. 그 정책들 중 쇠돈을 사용하는 것과 공동 식사를 하는 것은 정말 독특하다고 생각된다. 스파르타에서는 개인 재산을 필요 이상으로 갖게되면 짐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공동 식사를 통해 함께하는 시간을 계속 가지면, 별난 생각을 하는 세력이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또한 서로 의견을 나누며 더욱 현명해진다. 스파르타는 아이의 양육에 있어 엄격했는데, 이 부분은 조금 잔인하다. 고대 그리스 시대는 병약한 사람은 쉽게 죽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지금과는 삶이 전혀 다르다. 사람들은 많은 죽음을 목격했을 것이고, 그래서 약한 아이는 죽이고, 남은 아이는 강하게 키운 것 같다.


리쿠르고스의 마지막

리쿠르고스가 세운 모든 제도는 이제 일반 국민들의 관습이 되어 국가의 모든 정치 체계는 확고한 기초 위에서 성숙해 갔다. 리쿠르고스는 모든 시민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모든 일은 국가의 행복을 위해 잘 짜여져 있소. 이제 가장 크고 중요한 일은 신의 뜻을 물어 보는 것이니 내가 델포이 신전에 가서 신의 말씀을 듣고 오겠소.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지금 쓰고 있는 법을 고치지 않고 잘 시행하고 있겠다고 할 수 있겠소?" 이 말에 모두가 찬성했다. 델포이 신전에서 신에게 법률, 정책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받은 뒤, 리쿠르고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나는 살려면 더 살 수도 있지만, 죽으려면 죽어도 좋을 나이에 이르렀소. 가까운 친구들이 모두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았으니, 이제 나는 여기에서 죽기로 하였소". 그렇게 리쿠르고스는 음식을 끊고 조용히 죽음을 맞았다. 시민들은 그가 돌아올 때까지 정치를 고치지 않겠다고 맹세했고, 그가 죽음으로써 그의 일평생의 사업은 영원히 지속될 수 있게 되었다. 스파르타는 리쿠르고스의 법률을 500년 동안 그대로 지속하였다.


리쿠르고스는 개인적으로 아주 멋있게 느껴지는 사람이다. 그의 정책들은 타당하고 현명했다. 무려 기원전 9세기에 이러한 생각을 했다는 것이 놀랍다. 현대사회에서는 지켜질 수 없는 정책들이라는 점에서 또 매력적인 것 같다. 우수한 정책을 제외하고도 법률을 글로 기록하지 않고, 청년의 마음에 새긴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세상에 절대적인 틀은 없다. 항상 도달하게 되는 결론이다. 잘못된 것을 느낀다면, 글로써 적혀있는 수많은 법과 강령들을 언제나 어길 수 있어야 한다. 리쿠르고스는 세상이 변함에 따라 법, 정책에 있어 틈이 생기는 것을 생각한 것 같다. 그가 정책을 통해 전하고자하는 바가 분명하기에, 스파르타에서 그의 정책이 오랫동안 지속된 것 같다. 리쿠르고스는 죽을 때까지 스파르타의 영웅이었다. 칼을 휘두르는 영웅은 100년을 못가지만, 리쿠르고스가 남긴 스파르타의 의지는 500년이 넘게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