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14. 00:11ㆍ흥미/고전
서머싯 몸과는 구면인데, 정확히 1년 전 이맘때에 서머싯 몸의 『면도날』을 읽었다.
그 책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작품은 작가의 생각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그는 당시에 유행한 파티문화ㅡ격식을 차리고 교양인들과의 사교적 모임ㅡ에 대한 반감이 있었던 것 같다. 책의 내용은 다를지언정 그의 작품에는 이에 반감을 가지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들은 그러한 주류를 벗어나 무언가를 지향한다. 또한 서머싯 몸은 그의 작품에서 관찰자로 나타나곤 한다. 재밌는 점은 그는 의대졸업생에, 어느정도 명성을 얻은 작가인 자신을 그대로 작품에 등장시킨다. 생동감을 위해서 이런 장치를 사용하는 것 같다. 서술자로써 예시를 보충하기 위해 간혹 서머싯 몸의 이야기도 종종 나오는데 이게 또 색다른 재미가 있다. 또한 서머싯 몸이 제 3자에게 들은 이야기를 통해 작품을 이어나가는 경우가 잦은데, 이 방식이 일종의 신비감을 부여하는 것 같다. 이정도로 서머싯 몸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작품으로 넘어가겠다.
달과 6펜스 줄거리 (스포 o)
찰리 스트릭랜드라는 사람은 살아생전 인정받지 못하는 화가였다. 그의 사후에 작품이 재평가 받으면서 그가 천재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그의 작품, 그의 삶에 대한 평가가 이어지는데 이 부분에서 '나'는 조금 불만이다. 작품에 대해서는 할말이 없지만 스트릭랜드의 삶에 대해서 알려진 내용으로는 그를 이해할 수 없다고 본다.
내가 처음 스트릭랜드를 본 것은 그의 부인이 개최하는 사교모임에서이다. 부인과 반대로 스트릭랜드는 사교모임에서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어느날 스트릭랜드는 처자식을 버리고 파리로 간다. 부인은 스트릭랜드가 여자가 생겼다고 생각하고 '나'에게 부탁해 그를 데려와달라고 한다. 예상과 달리 스트릭랜드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파리로 간 것이었다. 그는 여자와 이전 생활에 혐오감을 드러내며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한다. 스트릭랜드는 계속 파리에 살며 가난한 생활을 반복한다. 5년 뒤 '나'도 파리에서 생활을 하는데 친구 '스트로브'와 종종 스트릭랜드를 만나게 된다.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에게 항상 놀림받지만 그에게 도움을 주고 그의 재능은 천재적이라고 한다. 어느날 병에 걸린 스트릭랜드를 간호하기 위해 스트로브의 집으로 들이게 된다. 스트릭랜드가 회복될 때쯤 스트로브의 아내가 스트릭랜드를 사랑하게돼 그를 따라간다고 한다. 착한 스트로브는 자신이 집에서 나간다. 몇 주 뒤 스트로브의 아내는 자살하고 마는데, 스트로브는 좌절하면서도 스트릭랜드를 증오하지 않는다. '나' 역시 스트릭랜드를 욕하면서도 미워하지 못한다.
그 뒤 스트릭랜드는 타히티 섬에서 지낸다. 여전히 가난한 삶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데, 사람의 발이 잘 닿지 않는 곳에서 작은 가정을 이룬다. 자연 속에서 그림을 그리며 조용한 삶을 살다가, 어느날 의사에게 문둥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죽음은 피할 수 없었고, 그는 계속 그림을 그린다. 죽기 전까지.
모 위키를 참조하면 '달'은 미술가가 갖는 이상을 나타내고 '6펜스'는 그와 반대되는 사회 물질적인 재화를 의미한다고 한다. 여기서 달은 딱히 반론의 여지가 없다. 6펜스에 대해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이다. 달과 6펜스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대한 주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6펜스는 가난한 생활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달과 6펜스는 찰스 스트릭랜드에게 있어 예술과 뗄 수 없는 가난함에 대한 의미를 나타낸다. 그렇다고 6펜스가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예술을 추구하기 위한 환경이 아닐까. 스트릭랜드는 스스로 가난에 걸어가 본인의 이상을 일궈냈다. 스트릭랜드는 매우 이기적인 사람으로, 잔인한 선택을 서슴없이 한다. 따라서 그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이상을 찾아가는 모습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스트릭랜드의 모티브인 폴 고갱의 삶을 찾아봤는데, 책과는 많이 달랐다. 책에서는 현실과 일절 타협없는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로는 달랐던 것 같다. 생각보다 더 초라하고 예술가의 모습도 덜했던 것 같다. 하지만 고갱의 작품은 달과 6펜스에 묘사된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꽤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다음은 내가 깊은 인상을 받은 책의 구절이다.
"나는 예술이란 성적 본능이 구현된 것이라고 본다. (중략)
어떻게 생각하면, 스트릭랜드가 보통 방식으로 성욕을 방출하기 싫어했던 것은 예술적 창조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에 비해 그것이 야비하게 여겨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달과 6펜스』 2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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